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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와 조선의 성(性)윤리관 차이... : 네이버 블로그

 庶翁 2018-02-09
강원도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헌화공원에 자리한 수로부인 조각상. 뒤로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사진=삼척시
  신라시대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는 수로부인(水路夫人)이었다. 이름처럼 ‘부인’이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로부인이 가는 곳마다 센세이셔널한 일들이 터졌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의 〈수로부인〉 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첫 이야기는 이렇다.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임명되어 가던 중,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주변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깎아지른 그 절벽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처(妻)인 수로부인이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꽃을 꺾어 바칠 사람, 그 누구 없소?”
 
  옆에서 모시는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당연했다. 어느 정도여야 시도하지 아주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런데 옆에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부인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꺾어다 바치겠다고 나선다. 그러고는 정말로 그 절벽을 올라가 철쭉꽃을 따 가지고 내려와 수로부인에게 바치면서 노래까지 불렀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니,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헌화가(獻花歌〉
 
  기록은 여기까지다. ‘이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는 부가설명이 전부다. 누가 봐도 이 노인은 수상쩍기 그지없지만 능력은 대단하다 못해 초인이나 신이라고 할 정도로 탁월하다. 기록에 ‘노옹(老翁)’이라고 분명하게 표기한 것으로 보아 늙은 것[老]은 분명하나 그 시절 ‘늙음’을 지금의 60~70대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수로부인도 결혼했으니 ‘부인’이고 출산이 가능한 아름다운 여성이란 점에서 ‘부인’이지 나이로 치면 30~40대라기보다는 20대 초반이나 중반일 것이니 ‘노인’도 대략 40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수로부인과 노인들의 관계
 
〈매춘부들을 데리고 나온 뚜쟁이〉를 그린 18세기 영국의 풍속화(작가 미상). 이 시대의 사회상을 그린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삽화다. 사진=구글이미지
  분명한 것은 수로부인이 꽃이 예쁘다는 이유로 “저것 좀 따 줘!”라고 부탁하는 말이나 뉘앙스는 분명 에로틱하다. 어찌 보면 퍽 난감한 철부지 같은 여편네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랫말도 그런 분위기를 풍겨 낸다. 연구자들은 노인을 산신(山神)으로 보아 꽃을 꺾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암소 역시 희생제물이란 의미이다. 아주 그른 말은 아닌데 제사니 희생이니 하는 것을 지금 현대의 관점에서만 보게 한다는 점에서 설명이 더 명확할 필요가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를 살펴보자.
 
  순정공 일행이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갔다. 임해정(臨海亭)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의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납치해서 바닷속으로 끌고 가 버렸다. 순정공은 넘어져 바닥에 쓰러져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자 또 어떤 한 노인이 말했다.
 
  “옛 사람들 말에 ‘뭇사람의 입은 쇠라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바닷속 짐승이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이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모아서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바닷가 땅을 두드린다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정공이 노인의 말을 좇아 그대로 했다. 백성들은 모여 막대기로 바닷가를 때리며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 〈해가(海歌)〉
 
  그랬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모시고 나와 그대로 바쳤다. 순정공이 부인에게 바닷속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더니 그녀가 이렇게 말하였다. “칠보로 꾸민 궁전의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한 것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서도 이상한 향내가 풍겼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도 ‘노인(老人)’이 등장한다. 물론 이 노인은 앞 이야기의 그 노인은 아니지만 암소 끄는 노인만큼이나 현명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한다. 노인의 말처럼 하자 동해용에게 잡혀갔던 수로부인이 돌아온 것이다.
 
  두 이야기를 잘 놓고 보면 수로부인과 노인들의 관계, 그리고 이 수상쩍은 순정공의 강릉태수 부임 행차의 본질을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순정공은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중이었다. 신라의 서울은 경주이고 그곳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은 바닷가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지금과 달리 그 먼 거리를 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고 단단한 방비가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기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지방 호족세력은 언제나 존재하고 무시 못할 존재로 지방에 웅거했다. 중앙에서 강릉태수로 순정공이 파견됐다. 강릉 지방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란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다. 중앙관리는 외부인이고 또 목적은 세금 걷기가 시작이자 끝이다.
 
  순정공이 처음 부닥친 장애는 높은 절벽이었을 것이다. 그 절벽을 통과해서 가야 한다는 말은 원문 어디에도 없지만 철쭉꽃을 따 달라는 수로부인의 말에 하나같이 난색을 표명한 것은 지금 순정공 무리의 내부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문제를 암소 끄는 노인이 해결한다.
 
  이틀 지나 또 문제가 발생한다. 동해용이 수로부인을 납치해 간다. 노랫말처럼 ‘남의 부인을 뺏은 죄’는 무지막지하게 크다. 하지만 순정공은 땅을 구르며 탄식만 한다. 부인이 아름다운데 뺏겨서일 수도 있고 처가 납치당하는 모욕을 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그의 정치적 위신엔 큰 타격이고 그 주변 무리들은 눈뜨고 당했으니 얼간이 무리들이나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때 해결책은 지역 백성들을 모아다가 노래를 부르는 거였다. 동해용의 상징은 지방호족일 테고 그가 순정공 세력과 대결해서 우위를 점했다. 순정공이 세력을 가다듬어 백성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되고 그 세력의 힘으로 우세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용이 사과를 했다는 말도 없고 동해용을 죽였다는 말도 없다. 아마도 동해용의 세력은 여전히 그곳에 웅거하고 있을 것이다. 절벽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신라의 마타하리, 수로부인
 
디오니소스는 로마신화에서는 바커스(Bacchus)라고도 하며 술의 신, 다산을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디오니소스(dionysus) 축제는 1년에 네 차례 열렸고, 참석자들은 일주일간 모두 벌거벗고 먹고 마시며 혼음을 즐겼다. 사진=구글이미지
  이제 수로부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꽃을 꺾어 달라고 한 이야기만 보면 수로부인은 한마디로 바람난 철부지 여자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지금 극도의 긴장 가운데 부임지로 향하고 있는데 태수 부인이란 여자가 그깟 꽃 하나 따 달라고 앙탈을 부리며 색기를 흘리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동해용에게 납치당했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 꼭 그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할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로부인은 바다에서 돌아온 후에도 “칠보로 꾸민 궁전의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한 것이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어요”라며 철부지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곳이 좋다고 다시 가고 싶다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세력의 정치적 문제로 살펴보면 똑같은 말도 다르게 느껴진다. 수로부인이 저쪽 진영, 그러니까 동해용 세력의 진영을 낱낱이 살피고 돌아와 말해 주는 종합 첩보보고처럼 들린다.
 
  “저쪽이 만만치 않아요. 함부로 부딪치지 말고 이쯤에서 타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동해용의 사과도 죽음도 기록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두 세력이 타협하고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수로부인은 ‘신라의 마타하리’라고 해도 될 정도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는 두 에피소드 후에 다음 서술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수로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뛰어나서 매번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들에게 납치되곤 하였다.
 
  단순히 보면 수로부인은 세상 물정 모르고 덜렁대는 푼수끼 있는 여자로 가는 곳마다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는 말이고 〈수로부인〉조의 이야기를 면밀히 따져보면 그녀는 가는 곳마다 큰일들을 했다는 의미이다. ‘여러 차례 신령한 것들[神物]에게 납치되곤 했다’는 것은 그때마다 귀환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수로부인은 저쪽으로 갔지만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귀환이 그녀의 자의에 의한 것인지, 순정공 같은 자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건 수로부인이 남편 순정공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그것도 중요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순정공은 별다른 역할이 없다. 그에 대한 기록도 ‘수로부인의 남편’이라는 것이 전부다. 순정공의 역할은 결국 아내 수로부인을 통해 정치적 술수와 정략적 결연 등을 서슴없이 행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유럽 근대의 궁정정치를 슬쩍 들춰보면 깨달으실 거다. 부인이 왕이나 재상의 눈에 띄어 그들의 내연녀가 되는 순간, 그 남편이 쑥 승진하고 작위를 받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성이 오페라나 가곡을 부를 때 몸에 착 달라붙고 뒤쪽으로 훅 터진 옷을 입는 연유가 바로 그렇게 높은 분들께 성적 어필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인을, 때로는 딸을 성적 상품처럼 포장해 낸 거였다. 매혹적으로 말이다. 내 말이 아니다.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가 이미 오래 전에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한 후 내린 결론이다.
 
 
  향기는 정체성이다
 
  수로부인의 역할이 주도적이고 범상치 않았음은 《삼국유사》의 조 명칭이 ‘순정공’이 아닌 ‘수로부인’인 것만 봐도 분명하다. 그녀가 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은 ‘꽃을 꺾어 달라’고 한 말과 노인이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랫말에 은유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동해용에게 잡혔다가 돌아왔을 때 ‘그녀에게서 이 세상에서는 맡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냄새가 났다’는 것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수로부인이 가는 곳마다 제사(祭祀)와 제의(祭儀)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매번 먹을 것을 차려놓는 점심 때 일이 발생하고 도와주는 존재로 노인이 등장하고 둘 다 노래가 불리고 부인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것 등에, 이야기의 시대배경인 신라 성덕왕 때가 역사적으로 천재지변과 가뭄이 극심한 정황까지 더하면 꽤 설득적이다.
 
  그러나 제의 상황을 지금의 눈으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당시 제의는 당연히 혼음(混淫)이 전제되었고 그것은 성적 방종이 아니라 신과의 합일(合一)을 의미하는 의식이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와 농경축제의 상황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수로부인을 무녀(巫女)로 보든 여사제(女司祭)로 보든 변치 않는 것은 그녀가 ‘부인’이고 출산이 가능한 생산적 존재로서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당시에도 에로틱한 섹스어필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순정공은 그렇게 툭하면 납치당하는 문제적 부인을 항상 데리고 다녔던 거고 그녀는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거듭 신적 존재들에게 납치를 당하곤’ 했던 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몸엔 향기가 남았다. 여러 향기가.
 
 
  금돼지에 납치당한 최충 부인
 
16세기에 출간된 소설 《최고운전》.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시간을 훌쩍 돌려 조선시대 16세기로 와 보자. 《최치원전》 또는 《최고운전》이라고 하는 소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위대한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인데 내용은 좀 불경스럽다. 최치원의 어머니가 금돼지에게 납치됐다가 돌아와서 최치원을 낳았다는 거다. 물론 소설 이야기다.
 
  소설이 허구인 것은 최치원의 아버지로 ‘최충’이 등장하는데, 실존인물 최치원의 아버지는 당연히 최충(崔冲)이 아니다. 최치원은 신라 때 인물이고 해동공자 최충은 고려 때 사람이니 그렇게 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지어 낸 《최고운전》 이야기 속에서는 이렇게 최치원의 탄생담을 말하고 있다.
 
  옛날 신라왕이 최충에게 문창(文昌)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라 했다. 문창 고을은 부임하는 수령마다 그 부인이 사라지는 변괴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최충은 집에 돌아와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 사연을 들은 아내도 탄식을 한다. 결국 최충은 문창 고을에 부임한다. 부임한 후 최충은 관청에 나갈 때마다 아내의 손에 붉은 실을 묶어 두고 나갔다.
 
  어느 날 번개치고 우뢰가 쿵쿵거리는 때, 갑자기 아내가 사라지고, 변괴를 전해 들은 최충은 통곡한다. 붉은 실을 따라가 보니 산꼭대기 바위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을 노인들의 말을 들으니 한밤중에 그 바위가 열린다고 해서 밤중에 기다리다 열린 바위틈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 안은 완전히 별천지였다. 한가운데 크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궁전 같은 집이 있었다. 최충이 숨어서 엿보니 금돼지가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최충은 자신이 차고 있던 향내 나는 약주머니를 열어 냄새로 자신이 왔음을 아내에게 알린다. 그러자 아내가 그 향기를 맡고 남편이 온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더니, 금돼지의 약점을 물어본다.
 
  “나는 사슴 가죽이 무서워.”
 
  금돼지의 약점을 알아낸 부인은 그의 목 뒤에 사슴 가죽을 붙였다. 그러자 금돼지가 곧 죽어 버렸다. 최충은 아내와 같이 잡혀 있던 이전 원님의 아내들까지 모두 구해 내서 돌아왔다. 돌아온 아내는 최치원을 낳았다.
 
  아내는 금돼지에게 잡혀가기 전에 임신한 상태였는데 최충은 금돼지에게 잡혀간 후에 낳았기 때문에 최치원을 금돼지의 자식이라 생각해서 바닷가에 내다버렸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젖을 먹여 기르는 등 신이한 일이 일어나자 최충은 다시 아이를 데려오려 한다. 하지만 3살 된 어린 최치원은 ‘잔인하고 정이 없는 사람’이라며 아버지를 거부하고 홀로 글을 배우고 읽으며 지낸다.
 
  《최고운전》의 이야기는 이후부터는 최치원의 흥미진진한 활약이 펼쳐지는데 우리의 관심은 바로 이 앞부분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여기도 이 세상이 아닌 별천지가 나오고 무능한 순정공처럼 못난 남편 최충이 나온다. 수로부인을 잡아가는 동해용처럼 최충의 부인을 잡아가는 금돼지도 꼭 같다. 임해정을 지나는 중앙관리의 부인을 잡아간 동해용이 대단한 능력의 신물(神物)이었던 것처럼 문창고을 원님의 아내를 잡아가는 금돼지도 대단한 신통력을 지닌 존재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비로소 수로부인이 동해용에게 잡혀가서 ‘갖가지 기이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나, 그래서 ‘몸에 이 세상 것이 아닌 기이한 향기가 났다’는 것의 의미가 분명하게 성관계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하세계의 금돼지가 최충 부인의 넓적다리를 베고 잠든다는 것은 성관계의 은유이다.
 
  때론 각 편에 따라 납치된 여성들이 일부러 몸에 상처를 내서 성교를 회피했다고 설명을 하기도 하고 금돼지가 암컷이라는 좀 우스운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온 부인이 낳은 최치원을 두고 사람들이 “금돼지가 낳은 최치원”이라 부르는 것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당연히 성관계가 있었다.
 
 
  신라와 조선의 성(性)윤리관 차이
 
  중앙관리의 아내를 납치하는 것은 그 관리에 대한 도발이고 중앙에 대한 도전의 상징적 행위이다. 물론 아내 납치는 단순한 장난이나 재미가 아니고 곱게 모셔 두려는 볼모도 아니다. 훼손이고 능욕이고 모욕이다. 그러니 수로부인에게서 난 향기는 분명하게도 성관계의 결과이고 저쪽 세계에 속한 존재가 되었던, 또는 되어 보았던 결과이다. 물론 이쪽 순정공의 세계로 귀환했으니 차츰 그 향기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최충의 부인에게선 향기가 났을까? 그녀도 금돼지와 관계가 있었으니 그쪽 향기가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최충의 부인에게서 나는 냄새 이야기는 없다. 대신 향기는 최충이 풍겨 낸다. 자신이 이 지하세계에 들어왔다고 남편 최충이 향내 나는 주머니를 열어서 향기를 풍겨대는 것이다.
 
  〈수로부인〉 이야기의 문면을 꼼꼼히 읽고 따라왔다면 느꼈겠지만 수로부인의 몸에서 나는 기이한 향기에 대해 서술자는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동해용에게 잡혔던 사건을 문제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거나 패악무도한 것으로 매도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몰아붙이려면 두 손 놓고 아내를 뺏길 때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순정공이 더 먼저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최고운전〉은 최충 부인이 금돼지에게 넓적다리를 내놓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냄새’ 아닌 ‘향기’는 최충이 풍기고, 그 ‘향기’가 좋은 곳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순정공은 고을 사람들을 모아 막대기로 바닷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위협을 가했다. “잡아먹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최충은 그저 ‘이쪽이 옳은 쪽이오. 이쪽으로 오시오’ 하는 메시지만 거룩하게 흘렸다. 금돼지에게 약점을 물어본 것도 사슴 가죽으로 금돼지를 퇴치한 것도 모두 다 최충 부인이었다.
 
  이것이 바로 신라시대를 서술해 놓은 《삼국유사》와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조선시대에서 창작된 《최고운전》의 거리이다. 그래도 한 가지 《최고운전》의 작가는 아주 작은 하나를 눈 밝고 귀 맑은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았다. 그건 눈물이었다. 향기를 맡고 남편 최충이 왔음을 안 최충 부인이 흘린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금돼지의 세계에서 최충의 세계로 귀환을 촉구하는 남편의 호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응답이었다. 그녀는 금돼지의 세계가 좋았을까? 아니면 최충의 세계가 좋았을까? 눈물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금방 알게 되실 것이다.⊙
[월간조선 2016년 10월호 / 글=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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