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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문학관 ] 수필 - 산에서 배우는 인생

 庶翁 2018-01-15

◎  김동수



산에서 무슨 인생을 배우냐고, 참으로 싱거운 사람도 있다고 의아해할 것이다. 산은 주역에서 사용한 8괘 자연현상중의 하나로서 간(艮)이라고 부르는데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는 산을 가리킨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반 없을 것 같다.

원래 시골태생 탓인지 아니면 날 때부터 산을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 났는지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천명을 넘긴 나인데도 나는 산을 몹시 즐긴다. 아니, 미칠듯이 산을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뒤집 누나와 함께 천지꽃잎 따러 마을 뒤산으로 오른 것이 아마도 첫 산행인 것 같다. 천지꽃잎을 꿀에 재워먹으면 오래비의 오랜 고질병인 천식을 치료할 수 있다면서 누나는 천지꽃잎을 따고 또 땄다. 연분홍 꽃잎같이 아름다운 누나의 모습과 선량한 마음이 지금도 사춘기 소년시절의 아리숭한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시절 산을 특별히 좋아한 것은 허기진 배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기 때문이였다. 

내가 66년 말띠생이니 그 때는 먹을 것이 귀하던 시기였다. 지금의 아이들은 무엇이나 먹기 싫어서 안 먹지만 그 때는 무엇이나 없어서 먹지 못했다. 봄철에 야생으로 자라나는 두릅이나 쇠채는 물론 가을철의 개암이며 머루며 호두며 잣 모두가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이감들이였다. 

그 때 마을 뒤산에 전쟁준비로 파놓은 ‘방공호’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군대굴’이라고 불렀다. 우리 또래들은 눈만 뜨면 그 곳으로 달려갔다. 소나무옹이는 기름기가 많아 잘게 쪼개면 제법 불이 잘 붙는다. 우리 선조님들이 가장 원시적인 조명으로 사용한 것이 광솔불이다. 우리는 광솔불을 들고 ‘군대굴’에서 설쳤다. 때로는 오구작작 모여앉아 《수호전》이나 《삼국지》같은 렵기적인 이야기에 폭 빠졌으며 ‘처녀귀신이야기’며 ‘군대굴’ 어느 곳에서 ‘관재널’이 뚝 떨어지더라는 무서운 이야기에 모골이 송연하여 허겁지겁 산에서 뛰여내려오기도 했다. 겨울이면 눈이 내린 산에서 쪽발구를 타는 재미로 손발이 얼어들고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이처럼 산은 계절이 따로 없이 산골 아이들의 삶의 놀이터였고 ‘왕국’이였으며 동년의 꿈이 묻혀있는 어머니품 같은 존재였다. 차츰 뼈가 굵어지고 나이가 들면서 산은 나에게 그 어떤 ‘무적의 힘’과 같았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무작정 산에 오른다. 더구나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진실한 마음과 우정이 그리울 때, 삶이 고달프고 지칠 때 산에 오른다. 그 산이 높든 낮든 잘 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가리지 않고 올랐다. 

산은 말이 없어 좋다. 산은 기뻐도 즐거워도 슬퍼도 괴로워도 말이 없다. 줄기에 줄기를 내리고 웅기중기 뒤엉킨 무수한 산발들을 거느린 몸이지만, 그 많은 울울창창 무성한 삼림을 배태하고 자래우는 몸이지만 힘들다고 괴롭다고 불평 한마디 없는 산이다. 그러면서 묵묵히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와 밀림의 설레임소리를 들어주고 되새기고 다독여준다. 그래서 어느 가사에서 ‘아버지산’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정한 세월과 모진 생활의 세파에 시달린 구부정한 몸으로 천마디 말보다는 행동으로 묵묵히 자식의 곁을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아버지의 산같은 사랑이 가슴으로 절절히 느껴진다.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이 소소리 높은 산정에서 아버지! 하고 길게 불러보라. 그러면 스스로 그 답을 얻을 것이다. 

산은 변함이 없어 좋다. 산은 언제 어느 때 올라도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휘날려도 루루천년 꿋꿋한 모습 그대로다. 락엽이 지면 넓은 품에 안아 삭여주고 눈 내리면 온몸으로 반겨주고 받아준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봄이 오기를, 태양이 솟기를 변함없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늘 입으로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맹세한다. 그러나 요즘 세월엔 너무나도 쉽게 변하고 무색해지고 무너지는 것이 사랑이다. 부부간의 사랑도, 자식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도, 부모에 대한 효도, 친구사이의 우정도 어딘가 오직 돈이라는 ‘종이멍에’에 목숨을 걸고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 그 뿐이랴. 상대에 따라 얼굴색이 팍팍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족속들이 출현하여 갖은 연기를 다 부려 눈뿌리 빠질 지경이다. 남이야 연기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그 연기가 다른 사람을 긁고 씹는 ‘악연기’이니 하는 말이다. 

산은 질투하지 않아 좋다. 산은 종래로 질투를 모른다. 그것이 높든 낮든 언제 어느 때나 어깨나란히 다정하고 진정한 친구이고 참다운 형제이다. 


높다고 질투하지 않고 낮다고 깔보지 않는 것이 산의 가장 고귀한 품성이 아닐가? 산은 낮다고 절대로 자비를 모른다. 높은 산에 가리워 혹시 산처럼 보이지 않아 허술하고 무심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로서의 이름과 높이와 풍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 기가 죽지 않고 높은 산과 어깨를 겨룬다. 낮은 산의 진풍경과 매력과 가치를 느끼고 터득한 자만이 높은 산의 장엄함과 수려함을 감지할 수 있다. 

산은 높다고 자고자대하지 않고 구름과 하늘과 높이를 겨루며 때로는 구름 우에 솟아 소나기를 동반한다. 추운 겨울이면 추울세라 그 우람하고 거대한 몸으로 눈보라와 칼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더울세라 해볕을 가려주는 것이 또한 높은 산의 진정한 모습이다. 

요즘엔 자신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한테는 가련하게 빌붙으며 갖은 추태를 다 부리다가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깔보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수두룩하니 산 앞에서 겸허한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싶다. 

산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어쩌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군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건 하나도 없다. 산은 인간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고 등대이다. 산 앞에서 사람은 너무나도 왜소하다.

금전만능, 물질과욕, 권력람용, 자연파괴, 신용위기는 오늘날 가장 큰 사회적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전만능은 부패의 온상이 되여 어쩌면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정말이 아닐가 착각할 정도이다. 물질과욕은 리기와 탐욕의 팽창을 초래하고 권력람용은 인간의 량심과 인격과 가치를 말살하고 신용위기는 불신임시대를 낳고 있다. 자연파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홍수, 폭설, 가뭄 등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산은 사람답게 사는 비법과 지혜를 가르쳐주고 조화로움을 조절해준다. 산은 우리에게 심사숙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하며 경솔하면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는 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만이 진정 살맛이 나는 세상,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가. 


“청산은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깨끗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나는 오늘도 라옹혜근의 시구를 읊조리며 터벅터벅 산에 오르면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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